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더 마인호프 (문단 편집) == 개요 == [[서독]]의 [[극좌]] 무장단체. 독일의 [[68운동]]의 혁명적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조직은 그들을 무장 투쟁 운동 조직으로 소개했지만 서독 정부는 적군파를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그들은 우루과이의 투파마로스 등 남아메리카의 도시게릴라를 표방한 [[반제국주의]], [[공산주의]] 집단이었다. 정식 명칭은 Rote Armee Fraktion(로테 아르메 프락치온; RAF/[[적군파]]). 1967년 [[이란 제국|이란]]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의 서독 방문 반대 데모 진압 중에 학생인 베노 오네조르크(Benno Ohnesorg)가 [[독일 경찰|서독 경찰]] 카를하인츠 쿠라스(Karl-Heinz Kurras)의 총에 살해된 것을 계기로 결성되었다. 당시 독일을 비롯한 서구 사회는 상당히 보수적이었고 독일에선 베노 오네조르크의 피살을 계기로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에 저항하는 [[68운동]]이 확산되었다. 이름은 리더인 '안드레아스 바더(Berndt Andreas Baader: 1943 ~ 1977)'와 '[[마인호프|울리케 마인호프]](Ulrike Marie Meinhof: 1934 ~ 1976)'의 이름에서 따 왔다. 울리케 마인호프의 남편이었던 클라우스 라이너 뢸(Klaus Rainer Röhl)은 서독의 [[좌파]] 성향 잡지인 '콩크레트(Konkret)'의 설립자이자 출판인이었으며 마인호프는 여기서 편집장으로 일했다. 둘 사이에는 자식으로 딸이 두 명 있었는데 작은딸인 베티네(Bettine Röhl)는 훗날 독일의 유명 작가가 되어 어머니의 일대기를 쓰기도 했다. 마인호프가 점점 극좌 쪽으로 기운 것과 달리 뢸은 좌파 사상에 회의적으로 변하면서 부부 간의 다툼이 심해져 1967년 별거에 들어간 후 1968년 [[이혼]]했다. 이후 뢸에게 앙심을 품은 마인호프는 1970년 적군파 동료들과 함께 뢸의 집을 습격해 자신의 두 딸의 납치를 기도하기도 했으나, 납치는 마인호프의 여동생인 빈케가 아이들을 숨기면서 실패했다. 이 사건 이후 뢸은 완전히 전향하여 서독 경찰의 보호를 받으면서 적군파 체포에 협조하였으며 자식들도 어머니의 행동과 사상에 비판적이게 되었다. 2009년 쿠라스가 [[동독]]의 집권당인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소속 당원이자 [[슈타지]] 요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2012년에는 오네조르크를 사살한 동기가 당초 쿠라스가 주장한 정당방위가 아닌 고의적 동기[* 그러니까 간첩이었던 쿠라스가 '서독 젊은이들이 경찰의 과잉대응에 분노해 들고 일어나도록 유도하여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오네조르크를 죽였다는 것이다.]였다는 사실도 드러나면서 쿠라스를 다시 재판에 회부하라는 여론이 거세졌다. 그러나 쿠라스의 간첩 활동과 오네조르크의 사살 사이의 확실한 연관점이 발견되지 않았고 당사자인 쿠라스는 2014년 12월 16일 베를린에서 사망하면서 사건은 [[미제사건|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